“처음엔 무슨 일인지도 몰랐어요. 도와달라는 어르신의 말 한마디에 영문도 모르고 무작정 차에서 내려 차로 갓길을 달렸어요.”
2002 월드컵의 영웅이 한밤중 비오는 올림픽대로를 질주한 끝에 음주사고 뺑소니범을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.
그는 선수시절 100m를 11초만에 뛸 정도로 폭발적인 스피드를 자랑했었으며, 심지어 이번엔 슬리퍼를 신은 채로 뺑소니범을 추격해 붙잡은 것으로 확인됐다.
그 주인공은 바로 이천수였다.
사건 당일 이천수는 촬영과 행사 스케줄을 소화하고 인천 청라 자택으로 귀가 중이었다.
특히 이날은 유튜브 촬영 후 여의도의 한 쇼핑몰에서 이천수 이름으로 출시된 라면 홍보 행사까지 참여하는 등 빡빡한 일정으로 몸이 고단한 상태였다. 게다가 늦은 저녁 식사로 졸음까지 밀려와 편한 슬리퍼로 갈아 신고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량 뒷자석에 반쯤 누워있었다고 한다.
그때 한 남성이 이천수의 차량을 지나쳐 도망가듯 앞으로 내달렸고 그 뒤를 한 택시기사가 뒤쫓으며 도와달라고 외쳤다. 이에 이천수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하고 곧장 차에서 내려 비를 뚫고 약 1㎞를 추격한 끝에 올림픽대로와 동작대로 분기점 인근에서 남성을 붙잡았다.
붙잡힌 남성은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 취소 기준인 0.08% 이상으로 측정됐으며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낸 후 차를 사고 현장에 버려둔 채 도망친 것으로 밝혀졌다.
한편 이천수는 “현역 시절이었다면 더 금방 잡았을텐데, 슬리퍼 차림이어서 생각만큼 빨리 뛰지 못했다”면서 “비에 머리와 얼굴이 다 젖었지만, 누군가를 도울 수 있어서 보람을 느꼈다”고 말했다.
이어 “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. 그 상황에서는 누구든 그렇게 행동했을 것”이라며 “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알아봐 주신 것 같다.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알려져 쑥스럽다”고 소감을 밝혔다.